김관기 논평

비행기 부조종사와 개인회생

김관기 변호사 2016. 4. 29. 13:47

    몇 년 전, 본좌의 직무상, 국제선 운항하는 부조종사(co-pilot)를 만난 적이 있다. "여기 찾아 오셔서 반갑다. 빚이라는 것 아무것도 아니니 절대 걱정하지 말라. 당신 같은 사람은 탈 없이 비행기 운전만 하고 다니면 그 어느 인간도 건드리지 못한다. 딴 생각 않고 여기 찾아 온 ...것이 너무나 기특하다"라고 했다. 그 분의 걱정은, 자신이 국제선 타고 다니면서 쓸쓸함을 비롯하여 군 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익혔던 모험적 성격 때문인 지 기항지에서 심심풀이로 카지노에 손 댔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덕적으로 규탄 받아 여기 파산법정에서도 배제되면 어쩌나 이런 걱정을 한다는 것이다. 본좌의 답변: "당신이 그런 도박을 해서 먹고 산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이 있는 기업에 돈 대 주고 먹고 사는 은행이 있고 그 은행은 우리 같은 선량한 사람들이 낸 세금으로 움직인다. 도박이 죄라면, 우리 모두 모여서 한국마사회, 정선카지노 다 두들겨 부수고,선물/옵션 거래하게 하는 증권회사 문짝을 다 깨야 한다. 당신이 피해자다"........

 

   지금은 기억할 수 없는 오래 전 일이다. 전방의 전투부대에서 총기를 사용할 가능성 있는 보직에 빚이 많은 장교, 하사관들을 배제하려고 했더니, 막상 나라를 지킬 인원이 부족하였다는 믿거나 말거나 식 이야기.... 법원에서 군 부대에 개인회생을 홍보하러 갈 수 밖에 없었던 바로 그런 스토리들이다.

 

    하긴, 고대 로마에서도 출정한 병사를 채무불이행으로 체포하지 못하도록 한 선대 어느 황제의 칙령을, 어느 얼빵한 후대 황제인가가 대금업자의 청탁을 받고 철폐하고 나서 탈영이 빈발하여 야만족의 침입을 방어하지 못하였고 종국에는 쿠데타를 당해 황제의 모가지가 달아났다는, 그래서 그 다음 황제는 병사의 급여 압류를 아예 금지했다는, 그래서 그 영향이 근대법에도 남아 있다는 그런 이야기도 읽은 것 같다.

 

    총과 칼은 권력이다. 그런데, 그 총과 칼을 압박하여 행동하게 하는 것은 빚이다. 그렇게 위험한 것이 빚이다. 잉카제국을 멸망시킨 코르테스는 잔인한 원정을 통하여 수많은 금은보화를 스페인으로 실어 보냈지만 막상 본인은 빚 속에 빠져 죽을 때까지 새로운 빚을 구걸하다가 더 이상 원정에 나설 수 있는 힘을 잃었을 때에는 채권자들의 신용거절로 인하여 쓸쓸하게 가난하게 죽었다고 한다. 코르테즈를 따라다녔던 병사들도 전리품을 분배하는 그 몫에서 터무니 없는 폭리로 썼던 외상 빚을 먼저 공제하고 나면 여전히 빚을 벗어날 수 없었다고 한다. 그 빚을 벗어나려는 절망적인 투쟁이 원주민에 대한 가혹행위로 나타났다는 해석도 그럴 듯하다.

 

    총과 칼을 가진 병사에게 채권추심을 하지 못한다는 법령은 오랜 시간이 경과한 오늘날 지구 반대편 우리나라 강제집행법에도 나오지만 그저 병의 급료에 대한 것일 뿐, 직업군인들에게는 특례가 인정되지 않고 있다....

 

    사실 군인들이야 병영에 들어가고 관사에 들어가면 아무도 건드리기 힘드니만큼, 그저 군인의 급료는 장군이든 장교든 부사관이든 압류하지 못한다고 규정하면, 훨씬 사회는 평안해지지 않을까? 본좌는 군인 뿐만 아니라 경찰, 소방관, 비행기나 버스 운전수들도 군인에 준해서 급여를 압류하지 못한다고 규정했으면 싶다. 그것은 우리가 좋은 사람이라서가 아니고, 우리가 보다 안전하게 살기 위해서 필요하기 때문이다.

 

    황당하다고? 미국의 많은 주가 급여에는 압류(garnishment)를 금지하는 법률을 시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주에서는 인구 대비 파산신청율이 떨어진다고 한다. 왜? 굳이 파산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급여를 받아서 거의 모두 또는 전부 나아가 더 소비하는 사람은 파산으로 얻을 것이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저축하는 사람들과 달리 총수요 진작에 도움이 된다.

 

    가난한 사람들 빚을 면해 준들 자신들이 재벌 되겠는가? 아니다. 이들은 버는 족족 소비를 하여 실물 생산 기업에 가져다 준다. (채권추심업자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이나). 이들은 다른 사람을 재벌이 되게 해 주고, 영원히 빚을 갚는다. 그렇다면, 기업인들은 이 소비대중을 손가락질할 자격이 없다. 결코. 정책당국자들도 마찬가지이다.

 

    비행기 운전하고 다니는 모든 분들이여, 먼 나라에서 외로움에 지쳐 카지노 좀 다녀서 탕진했다고 우울해 하지 말라. 당신들의 직무에만 충실하라. 나머지는 다 해결된다. 나라 지키는 모든 이들이여.... 남의 생명 지키는 의사선생들이여.... 직무에 충실하라. 빚은 아무것도아니다.

 

    우울한 이야기이다. 조종사가, 군인이, 원자력발전소 운전원이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지, 몇 달 동안 여자친구와 교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그런데, 많은 남녀 관계에서 트러블은 돈이 조금 돌아가면 해결된다. 그것이라도 없으면 해결하기 힌들다) 밝히기는 수많은 바늘다발 중에서 문제 있는 것 하나 가려내는 것 이상으로 어렵다. 항공사가 자구조치를 하게 하기는 어렵다....... 적어도 사회 시스템은 빚으로 인하여서는, 경제적 문제로 인하여서는 반사회적으로 성격이 변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파산제도는 극도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현대 사회의 안전을 해하지 않기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적어도 총과 칼을 쥔 사람들, 다른 사람의 안전을 지킬 것으로 가정되는 사람들에게는 우울증의 원인을 제거해 주자. 이런 사람들이 사보타지를 하기 시작하면 문명이 무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