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학, 보건학적으로 석면의 유해성이 확립된 것이 그리 오래 되지 않다. 그 이전 백 수십년 동안 선진국의 기업들도 석면을 캐서 단열재 등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하여 왔다. 그로 인하여 발생한 질병이 직접 원인이 되어 죽음과 건강 손상에 이른 예가 수도 없이 많으리라.
문제는 유해성이 확립된 뒤에 즉각 행해졌어야 하는 조치리라. 미국에서 석면 피해자들은 줄줄이 피해 배상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고, 제조 회사들은 현금배상에 응했다. 그런데, 문제는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들 외에도 다른 많은 피해자들이 있을 수 있고, 이들은 현재에는 피해가 나타나지 않은 채 잠재한 채 수십년이 지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이론상 소송에 나타나 있지 않은 피해자들까지도 기업은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면 기업은 이들에 대한 채무를 회계상 부채로 인식하고 이를 처리하기 위한 자금을 모아야 한다. 그렇지만 불가능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현재 쌓아 두고 있는 현금을 소송에서 지는 대로 지급해 주고, 공장 문을 닫아야 하는가? 일반 민사법상의 질서에서는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해결은 (1) 아직 권리를 주장하지도 않고, 심지어 자신이 피해자인지도 모르는 자들을 보호하지 못하며, (2) 기업은 석면 말고 다른 유익한 재화도 생산하고 있는데 기업실체가 없어지면 이것을 계속하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사회적 손시리다.
현금을 많이 쌓고 있던 제조회사가 파산법정으로 들어가기를 선택하고, (당시에는 그들에게도) 놀랍게도 파산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다. 기술적으로 복잡하지만 대략은, 피해자에게 배상할 펀드를 따로 만들고 여기에 회사 주식 및/또는 재산을 출연하여 이것을 재원으로 장래의 피해자들이 (대략의 피해현실화 예상에 맞게 통계적으로 조정한 비율에 따라) 금전을 배상 받는 방식을 취한 것으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그리고, 이 피해자들이 사실상 지배하는 회사(가해자/채무자)는 석면 말고 다른 좋은 재화 생산 활동은 계속한다.
다시 요약하면, 마치 타인을 물은 개를 물린 피해자에게 양도하는 것이겠다. 이것은 공평하고, 또 정의감에 부합한다. 그러면서도,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활동은 지속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방식은 우리에게는 참으로 낯설기에 그 적용가능성 여부를 따지는 것은 이른 것 같다. 예를 들어 세월호 사고를 일으킨 청해진해운을 재조직해서 피해자들에게 주식 전부를 나누어주고, 그 이전에 있던 주식, 일반 채권은 전부 없애 버리는 것이다. 배는 규제에 따른 합당한 운항을 함으로써 버는 이익을 피해자들에게 배당한다. 이 방식의 이점은 또 하나. 우리는 영원히 세월호를 기억한다.
불법행위가 산업적으로 저질러지고, 피해도 대량으로 발생하는 상황은 이제 남의 것이 아니다. 정부 공무원은 안전에 관한 규제를 양보할 수 없는 가치로 삼아 추구하여야 할 것이고, 언론은 감시를 해야 할 것이고, 민사 소송을 특기로 하는 변호사들은 피해자들을 위해 나서야 할 것이고, 법원은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이 기업의 기존 주주 퇴출을 해야 할 정도가 되도록 융숭한 판결을 선고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기업인들의 행동이 변한다.
그것은 그것이고, 그렇게 하는 최종의 해결책은 역시 파산쟁이들에게 남겨진다. 유익한(그렇지만 가끔은 위험을 발생할 수 있는) 기업활동은 기업주들을 퇴출하고서도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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